문서관리 시스템 만들어본 후기 #9 — "이 박스 버려도 돼요?"
창고 정리하는 날, 누군가 박스를 들고 와서 묻습니다. "이거 버려도 돼요?"
그 순간 QA는 대답을 망설입니다. 안에 든 게 2019년 제조기록인 건 알겠는데, 언제까지 보관해야 하는지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이 사무실에 없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늘 둘 중 하나입니다. 몰라서 전부 보관하거나, 아니면 누군가 조용히 버려서 나중에 사고가 나거나.
전자기록도 똑같습니다. 공유폴더 정리하다가 폴더 하나를 지우면 그걸로 끝입니다. 휴지통도 30일이면 비워지니까요.
법령 문구부터 정확히 보겠습니다. 「의료기기법 시행규칙」 [별표 4]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제조 및 품질검사에 관한 제조단위별 기록 및 고객 불만처리 기록을 작성·비치하고, 이를 제조일부터 5년(제품 수명이 5년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제품 수명에 상응하는 기간을 말한다) 동안 보존할 것"
KGMP 고시 [별표 1] 4.2.5도 같은 선상입니다. 기록은 제품 수명주기에 상응하는 기간 동안 보유하되 최소한 제조일로부터 5년 이상, 시판 후에도 2년 이상입니다.
여기서 함정이 세 개 나옵니다.
첫째, 기산점이 작성일이 아니라 제조일입니다. 기록을 언제 썼느냐가 아니라 제품을 언제 만들었느냐가 기준입니다. 그래서 캐비닛에 붙은 "작성일 +5년" 라벨은 애초에 계산 기준이 다릅니다. 같은 박스 안에 제조단위가 섞여 있으면, 그 박스의 폐기 가능일은 가장 늦은 제조일 기준으로 잡아야 안전합니다.
둘째, 제품 수명이 5년을 넘으면 5년이 아니라 수명에 상응하는 기간입니다. 임플란트처럼 수명이 긴 품목은 5년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때 쓰는 "제품 수명"은 담당자가 감으로 정하는 숫자가 아니라, 기술문서·위험관리파일에 적힌 예상수명과 맞아야 합니다. 서로 다르면 그 자체가 지적사항이 됩니다.
셋째, "보존기간 지났으니 버린다"도 마음대로 하면 안 됩니다. 처분(폐기)은 승인을 거친 통제된 방법으로 하고, 무엇을·언제·누가 승인해 없앴는지가 기록으로 남아야 합니다. 법적 보류나 추적관리대상처럼 처분하면 안 되는 예외도 있습니다. 즉 버리는 일에도 절차가 있습니다.

실록에서는 폐기·장기보관 상태의 문서와 그 이력을 임의로 지울 수 없습니다. 상태가 바뀔 뿐 기록 자체는 이력으로 남습니다. "누가 실수로 지워버렸다"는 사고가 애초에 생기지 않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문서 상세에는 변경 이력이 그대로 남습니다. Rev A가 언제 시행됐고 지금 어떤 상태인지가 표 한 장으로 보이고, 그 뒤에는 언제 누가 무엇을 했는지의 감사기록(audit trail)이 붙어 있습니다. 심사원이 "이 기록 어떻게 관리하십니까"라고 물으면 화면 하나로 답이 끝납니다.
보존기간표와 처분대장 양식은 저희가 무료로 배포 중인 기록관리 절차서(SOP) 표준 양식에 이미 들어 있으니, 표부터 채워 보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여러분 회사의 창고에는 언제 만든 제품의 기록까지 남아 있나요? 그리고 그 박스, 버려도 되는지 지금 바로 답할 수 있으신가요? 댓글로 들려주시면 어떤 기준으로들 관리하고 계신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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